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사야 벌린 (문단 편집) === 뛰어난 정보원이자 외교관 === [[제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자 벌린은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영국 비밀정보부|영국 정보부]]에 근무하면서 로비스트로서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이라'는 임무를 맡는다. 그리고 그는 정치인, 노동조합대표, 국회의원, 저널리스트, 동료 로비스트들과 매일 접촉하면서, 거래가 어떻게 성사되고 환상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용되며 여론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될 수 있는지를 배웠다. 이 시기 미국으로 건너온 [[하임 바이츠만]]과 교류하고 바이츠만의 라이벌이었던 벤 구리온과도 관계를 유지하였다. 중립을 지키던 미국이 1941년 [[진주만 공습]]을 계기로 참전하게 되자, 그가 할 일은 더욱 많아지게 된다. 벌린은 수많은 행사에 참여하면서 미국동향보고서를 작성했고, 이 보고서는 소수의 엄선된 사람들만 볼 수 있었는데, [[윈스턴 처칠]], [[앤서니 이든]], 내각사무처, 정보국과 외무부의 고위급 인사, 대사들, 각료들은 물론이고 왕실에도 전달되었다. 상관들은 벌린이 보유한 정보원의 범위와 정보의 질에 감탄했다. 그의 평판은 날로 높아져갔다. 이런 활약 덕택에 미국 워싱턴의 영국 대사관 제1서기가 된 벌린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케인스]]와도 종종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아놀드 토인비]]는 벌린에게 외무부 연구부서의 한 자리를 제안하기도 했다. 1945년에 벌린은 모스크바 주재 영국대사관의 일을 맡기로 결심하고 25년만에 러시아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러시아 예술계 사람들과 친분을 쌓으면서 이곳에서도 공산주의에 핍박받는 그들의 모습을 동향보고서로 작성했다. 특히 《닥터 지바고》를 지은 [[파스테르나크]]와 시인 아흐마토바 등을 만났고 이들이 수년간 겪은 박해를 기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